토방에서의 하룻밤

토방에서 하룻밤이 몇 해 전이던가. 몸은 신기하게도 토방에서의 안온했던 그 하룻밤을 또렷이 기억
하고 있다.
흙바닥을 황토맥질을 거듭해 평평한 수평을 이루어 놓았다. 마치 그 입자가 하나도 잡히지 않을 정
도로 곱게 황토맥질해 마치 거위알의 표면처럼 약간 꺼끌꺼끌하지만, 손바닥으로 쓸어보아도 부드
럽기만 한 표면에 무슨 화학 소재의 장판을 깔고, 기름종이를 덧바를 것인가 싶었던 것이다.
주인아저씨가 장작불을 아궁이에 활활 하게 지펴 온기가 은근하게 전해와 아랫목에 드러누우니 살
속, 뼛속 깊이 삼투되는 것이 기분 좋게 전해져 왔었다.
황토와 살이 맞닿아 병든 짐승처럼 찾아든 나그네를 살려낼 것으로 믿었었다. 한없이 지치고 남루
한 영혼과 육신을, 황토 속에 발을 묻은 식물이 푸릇푸릇 되살아나듯 말이다.
산짐승도 병들거나 다치면 토굴 속에 웅크리고 제 몸을 스스로 치료한다고 하니 대자연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상한 물고기를 지장수 속에 넣어주면 상한 상처 부위에 새살이 돋고 점차 활기를 되
찾아 힘차게 헤엄친다는 말도 있다.
볕이 잘드는 창가에는 무 밑동을 잘라 유리병에 담아 올려놓은 것이 새싹이 돋아 정물화 같았다.
윗목에는 고구마 덕장에 한가득 고구마가 채워져 있었고 서까래에는 퀴퀴한 메주가 전형적인 농촌
의 체취를 풍기고 있었다.
출출하면 윗목에 단감이라도 깎아 자시라는 주인의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져 고향집에 온 듯 이질감
이라곤 조금도 들지 않았었다.
밤에 토방 마당에 내려서니 밤하늘에 별이 장대로 치면 살구처럼 후두둑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았다.
컹컹 ~먼데 개 짖는 소리, 방으로 들어서니 TV도, 두런두런 밤늦도록 대화를 나눌 벗도 없고 혼자서
꿈나라로 여행 밖에 일정이라곤 없는 절대 고독 그 자체가 도리어 감미로웠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한 부분인 그날 밤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의 인생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
나. 지나온 일과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고 정리도 해보며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지저귀는 새소리, 환하게 한지 창으로 짓 쳐드는 아침 햇살에 잠에서 깨었다. 상쾌한 아침, 몸도 마
음도 하룻밤 사이 치유된 듯 가뿐했다.
마당으로 나가 체조를 하고 논둑 밭둑 길을 나가 이슬에 신발이 다 젖도록 산책을 했다. 소찬이건만
아침밥은 꿀맛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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