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곡 천재동 선생 회고전

새봄을 여는 날, 탈과 토우를 만나고 오다!
울산이 낳은 예인 '한국의 페스탈로치' 증곡 천재동 (1915~2007)선생의 회고전이 3일부터 23일까
지 달동'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어 화재가 되고 있다.
교육자, 화가, 연극배우, 공연 연출가, 민속 예술가였던 증곡 천재동 선생!
그는 탈, 전래 동요화, 연극, 민속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혜안으로 우리의 독창적인 문
화를 이끌어 온 문화예술계의 선구자였다. 천재동 회고전은 봄이 오는 길목인 2016년 3월 3일(목)
오후 7시 울산시 남구 달동에 위치한 '리 갤러리(대표 이명숙)에서 울산의 유명한 문화예술계의
인사들이 참석을 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이날 회고전은 변함없이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국제다큐멘터리 작가인 김경상 사진작가와 예
인 천재동을 연구하고 세상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이기호 천재동연구소 소장의 진
행으로 깊고 넓은 의미를 부여한 특별한 회고전이었다.
천재동!
그는 누구인가!
그는 무엇을 하였는가!
다음은 예인 천재동 선생에 대하여 간략히 추적을 하여 보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울산
방어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문화예술을 일찍 접할 수 있었던 그는 유랑 과객으로부터 서화, 풍
물 등을 배우며 예인으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는 약관의 나이도 되기 전 16세에 '부대장'이라는 연
극 스토리를 써서 무대에 올렸다. 1939년 동요와 민속놀이를 채록하여 '천재동 전래동요화'를 창
안하였고, 토우 작품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광복 이후 방어진초등학교 교사
로서 교편을 잡으면서 참교육을 위해 많은 계몽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는 연극에 탈을 도입하
여 실용성과 예술성을 높이기도 하였으며 또한 최초의 창작탈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또한 동래
야류의 연구로 인간문화재로 위촉이 되어 울산의 위상을 높이기도 하였다.
이날 회고전에 선보인 공연은 영남대에 출강 중인 최경자 시뮤지컬 배우가 우리의 아픈 상처인 위
안부를 소재로 한 시극 '천재동의 아리랑'을 열연을 하여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를 하며 회고
전의 의미를 높이기도 하였다. 이어서 특별한 회고전에 다양한 계통의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여 감
사하다는 이명숙 대표의 인사말과 4월 YTN 뮤즈플러그, 5월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아스티헌 피아 캐
슬의 회고전 등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한 김경상 작가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어 커다란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회고전에 많은 귀빈들과 시민들의 참여에 가족을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 천재동
선생의 장남 천영배 작가,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 활동 중일 때의 아버지의 일화를 얘기하며
회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이어 ㈜다짐의 이진수 회장은 "고향 어른의 회고전을 직접 챙길 수 있어서
기쁘다"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회고전 동안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속마음을 밝혔다. 이날 회고전의
마지막 순서로 이기호 천재동 연구소 소장의 순서로 천재동 선생의 일대기와 일화들 그리고 선생이
활동을 한 문화 예술에 대한 소개를 아주 상세히 하여 주어 많은 관객들의 이해도를 높혀 주었다.
2016년 천재동 선생 탄생 101주년을 즈음하여 우리가 천제동 선생을 주목해야 할 점은 그는 이미
오래전에 일본군 위안부 사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을 시킨 작품 '남매의 비극'을 연극화 시키는 등
연극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90세였던 2007년에 회고록을 출간하였고 2년 후인 2009년
울산이 낳은 예인은 92세의 나이로 타계 하였다.
울산의 예인이자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증곡 천재동 선생, 이기호 천재동 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증
곡 천재동에 대한 평가나 업적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당위성을 얘기를 하였다.
천재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앞으로 문화 시민운동 차원에서 천재동 기념관, 천재동 길, 생가 복원,
문화거리 조성 등 그를 기리는 문화 예술지원 사업이 시급히 이루어지길 기대를 하여 본다.
글, 사진 : 김 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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