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남도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서러운 남도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류윤모 시인


강바람의 결기가  한풀 꺾이면  섬진의 강물을 파래 빛으로 물들이며 순한 남도의 봄은 온다. 안타까

운 강 물결이 섬진의 아랫도리를 찰박찰박 적시면  제일 먼저  눈뜨는 것이 매화와 동백. 흰구름장같

은 매화와 동백의 붉은 눈시울을  건너   노란좁쌀 같은 산수유 꽃이 겨우내  떼꾼한 길손의 눈에  밟

힌다.  백목련, 자목련 봉오리가   터진다.


다음부터는 순서도 없다.  진달래꽃이  온 산천을 물들이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듯 복사

꽃 피고 ,  춘정을 못 견디는  숭어의 비늘이 복사꽃 나무에 마구 비벼대어  꽃 몸살이 들어서 숭어

살에서도 은은한 복사꽃 내음이 난다고 했다.  이산 저산 산사내의 심금을 흔드는   보라의 싸리 꽃

지천이고, 과원에는 흰 눈발 같은 사과 꽃이 흩날린다.

 

얼어 죽을망정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지조의 상징 매화.  ‘절명 시’를 남기고 자결했던 매천 황현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그의 ‘절명 시’를

읊조리며, 그의 고향인 광양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섬진의 봄은 눈물 자국만큼이나 환하고도

서럽다. 숙성한 처녀의 얼굴 같은 참한 봄기운이 참빗질하여  내리듯 무장무장 쏟아져 내린다.

 

쳐다보면 밥 나오나. 돈 나오나. 배고파 굶어 죽겠는데 꽃이 피면 뭐하나.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사

랑스런 꽃들에 한 토막 정도 주지 못했던 핍진한 시절이 떠올라 가난하던 이 땅의 봄은 생각할수록

눈물겹다. 긴긴 봄날, 까까머리 어린 창자들이 굶주림에 낯에  마른 버즘이 피고  허천난 보리밥에

파리 떼 달라붙듯 오종종한 목숨 줄 저당 잡혀 현기증으로 넘던 긴긴 봄날의 그 보릿고개. 집단적 허

기를 달래던  곤궁한 시절이 흑백 영화의 필름을 되감듯 되살아와 새삼 명치끝이 아프다.

 

타박타박 타박 네야 너 어드메 울고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 간다

물이 깊어서 못간단다 물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서 못간단다 산 높으면 기어가지

명태 줄까 명태 싫다 가지 줄까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무덤가에 기어기어 와서 보니

빛깔 곱고 탐스러운 개똥참외 열렸길래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정신없이 먹어보니

우리 엄마 살아생전 내게 주던 젖 맛일 세
 

 - 전래민요 타박 네야 전문-


오죽 먹을 것이 귀하면  소나무 껍질을 벗겨 창자를 채우고, 자식들 멕일 것에 한이 맺힌 이 땅의 어

버이들은 눈으로 보는 꽃에 마저 먹을 것과 관련된 이름을 지어 붙였을까.  이팝나무, 조팝나무, 며

느리밥풀, 국수나무, 생강나무, 오이풀, 조개나물, 조밥나물, 솜나물….

 

복사꽃잎 우수수 흩날린다. 빚진 아비처럼 돌아앉은 지리산 허리를 안고 도는 섬진의  주름진  갈피

마다  복사꽃 향기가 스민다. 복사꽃은 역시 물빛에 겹쳐봐야  서럽도록 더욱 애틋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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