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의 여인

생각해보면 사람의 운명도 어쩌면 평소 노래 부르는 대로 결정지어지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한다.
‘산장의 여인’ 을 부른 가수 권혜경은 외로운 산장의 여인이 되어 쓸쓸한 노후를 마감했고, 애절하
게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가수 차중락은 자신의 예감처럼 낙엽 따라 가버렸다.
비감에 젖어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을 부른 배호는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고 돌담길 돌아서 가버
렸으며 ‘하얀 나비’ 의 가수 김정호의 영혼은 하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 버렸다. ‘비틀거릴 내
가 안길 곳은 어디에’ 의 가수 김현식은 비틀거리며 천국의 품에 안겨 버렸다. 자로 잰 듯 노래가
사와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유행가는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해 왔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오늘도....”가 도보로 걸어 이동하던 시대의 고난과 남부여대의 집도 절도 없이 헤매던 유랑난민
들의 정서를 대변했다면 ‘코스모스/ 피어있는/ 고향역/ 이쁜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70, 80년대에는 괭이 자루, 호미 자루 내던지고 도시로 도시로, 공장으로 공장으로 산업화의 물결
을 따라, 정든 고향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명절 때면 훤한 멋쟁이들이 되어 귀성길에 오르는 망향의
정서를 반영한 노래들이 크게 유행했었다. 나훈아 남진 맞수대결도 그때의 우상이었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재일교포들의 귀국선에서 내리던 장면을 노래한 곡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이후 마이카 붐이 불면서는 ‘그리운 고향이니’, ‘오늘도 걷는다마는’이 아침은 서울서 먹고
점심은 부산서 먹는 서너 시간이면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좁혀지니 시차적 불일치를 빚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일치기로 전국 어디든 가고, 만날 수 있는데 그리운 고향 어쩌구하는 노래가 맞지
않는 것이다.
요즘 노래를 보면 KTX로, 비행기로 촌각을 다투어 이동하고 자가용,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젊은이들
의 라이프 스타일답게 박자의 흐름이 급하다. 기성세대들로서는 무슨 노랫말인지도 모를 빠르고 급
한 템포의 랩이 젊은 층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정보화 세대의 스타트폰 문자 찍기나 마우스 클
릭 템포, 달리는 자동차의 눈알이 핑핑 도는 속도감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어깨춤이 나올 정도로 신이 나는 노래들이 많다. 발라드 곡들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청춘 남
녀들의 부박한 애정 상의 현주소고 사랑, 사랑 흡사 여름날 매미 우는 소리 같은 소음공해로 들리는
뽕짝 조의 노래들은 밤업소 CM송, 애인 만들어 손잡고 나오라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프리섹스의 만연에 방점을 찍을 수 있겠다.
다들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렵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볼수 있는 부분은, 전반적으로 굶주림의 절대빈곤
에서는 벗어나면서 노랫말에도 기성세대들의 가슴에 반세기 넘어 드리웠던 깊은 그늘과 한의 정서
가 점차 씻겨지고 노랫말이 한층 밝아졌다는 점이랄까.
글/류윤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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