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날 한지 亞字 창을 바르며
류윤모 논설실장/
아침저녁 한기마저 느껴지는 가을 초입, 볕 바른 날을 택일해 창호지를 바른다. 북풍한설 몰아칠 겨울맞이 채비다.
조심조심 한지창의 돌쩌귀를 엇갈려 떼어 봉당 앞에 비스듬하게 눕혀놓고 냉수를 한입 머금어 푸, 푸우 뿜는다. 물에 흠뻑 젖어 잘 붙도록 두었다가 구멍 나고 때 묻은 한지들을 일일이 떼어낸다. 마치 한해의 찌든 때를 벗기듯 말끔히 벗긴다.
마당 한 편에서는 작은 냄비를 걸어놓고 밀가루를 풀어 뭉근하게 죽을 쑨다. 잘 마른 亞字 창에 풀을 바르고 두 사람이 양끝을 잡고 새 한지를 펴서는 안팎 풀칠을 하여 붙인다. 떼놓은 亞字 창 네 짝 문을 한지로 바르고 난 후 문고리의 손이 자주 닿는 부위의 처리에는 꼼꼼하리만치 신경을 쓴다. 준비해둔 국화 잎사귀와 꽃잎을 넣고 이중으로 덧발라 문고리 부분이 찢어지지 않도록 특별 배려한다.
이제 창호지를 갈아붙인 네 짝의 한지 창에 국화꽃 잎까지 덧댄 외양이 마치 아씨가 입을 잘 마름질한 까실 까실한 한 벌의 치마저고리처럼 맵시가 있다. 뒷 봉창의 작은 문도 잊지 않고 떼어 정성껏 바른다.
네 귀퉁이 어디도 덜 바른 곳이 없나 꼼꼼히 챙겨 약간의 습기라도 남아 있으면 곰팡이가 피기 때문에 볕에 넉넉히 한나절 그대로 둔다. 태양의 각도가 설핏 기울면 볕에 두었던 한지 창들이 제대로 말랐나 손바닥으로 알뜰히 쓸어본다.
온종일 따끈한 볕에 제대로 말라 손바닥으로 쓸어보는 감촉이 좋다. 한지 창을 가져다가 암수 돌쩌귀를 맞추어 두 짝의 창문을 양 손바닥 맞추듯 맞추어 본다.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양옆 문과 뒷 봉창까지 맞추어 놓고 보니 방이 한결 아늑하다.
이제 장판을 뜯어내고 새로 깔 차례다. 장판으로 쓰이는 두꺼운 종이를 골고루 풀칠을 하여 방바닥에 튼튼하게 붙인다. 네 귀퉁이까지 꼼꼼하게 붙이고 보니 초례청의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치를 부끄러운 신방 같다.
넉넉히 하룻밤쯤 아궁이에 불을 넣어 바닥을 굳힌 다음 노릇노릇한 콩기름을 따루어 솔로 여러 번 덧발라 마르면 또 바르고를 거듭한다. 편편한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어디고 할 것 없이 감촉이 좋다.
노릇노릇하게 콩댐한 방바닥에 오체투지로 누워본다. 亞字 한지 창으로 한번 걸러서 들어오는 빛은 백자 항아리의 우윳빛처럼, 지나치게 밝지도 흐리지도 않은 은은한 조선의 빛이다.
한지 창을 통해 전해지는 새벽은 심성에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문앞 감나무 가지에 까치가 앉아 꼬리를 까딱까딱하며 깍깍 우짖는 날이면 어디선가 반가운 손님이 든다고 했다.
장판방 아랫목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한지 창에 덧댄 국화꽃 잎이 마치 여염집 아씨의 옷소매 같다. 어디엔가 있을 법한 그리운 빛깔이다. 열여섯 소년의 발그레한 볼에도 사랑이 찾아올 것 같다.
저작권자 ⓒ 뉴스울산(nunnews.kr) 무단복제-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