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부항령-우두령 19.5km)

8.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부항령-우두령 19.5km)



바람도 꽃이 된다


‘꼭 눈이 있어야 눈꽃이 피는 것이 아니었답니다.


차가운 바람으로도 꽃은 아름답게 피더이다


민주지산 삼도봉 임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쓰던 폰 메세지가 토막글이 되어 날라 갔다. 손끝이 얼어 더 이상 눌러지지가 않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한파였다.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소한 추위가 바람으로 설화(雪花)를 피웠다. 바람과 추위가 빗어낸 한 폭의 진경산수(珍景山水)다.


 혼자 보기가 아까운 절경인지라 그 풍광을 전하려 했으나, 그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꼭 눈이 있어야 설화가 피는 것은 아니었다. 바람만 있어도 눈꽃은 아름답게 피어났다. 설화는 차가운 바람을 맑게 피워 올려 마침내 꽃이 되는 바람꽃이다. 거센 바람이 밤새도록 피워 올렸으리라.


 선현(先賢)들은 풍광도 지극하면 함부로 눈길을 주지 말라 했던가. 발밑에 놓인 현실이 쓸쓸해진다고... 갈 길을 재촉했다.



 부항령을 출발한지 4시간여 만에 민주지산(1,242m) 삼도봉에 올라, 백두대간 무사 종주를 기원하는 신년 산신제(山神祭)를 올렸다.


檀君 4,339년 정월 초이렛날...백두대간 종주대원 일동은 三道山神과 地風 雪神께 敢히 고하나이다. 금번 저희들의 대간산행을 지켜주시고....


( 維 歲次 檀君4,339年 丙戌 正月 己丑朔 7日..... 白頭大幹 縱走隊員一同...)



 삼도봉(三道峰.1,172m)은 태종 때 조선을 팔도(八道)로 분할 할 때 충청, 전라, 경상, 삼도(三道)의 분기점이 되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삼도민이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산 정상엔 화합탑(和合塔)도 세워놓고 매년 기원제도 올리고 있다.

















멀리 희미하게 북덕유산 마루금이 보인다.



 체감온도가 낮다보니 그냥 서 있기조차 힘들다. 몸은 계속 움직여야 했다.대원들은 추위를 피해 도망가듯 산행을 서둘렀다 볼을 에는 찬바람은 쇳소리를 내면서 사방으로 칼을 휘둘러 댄다.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베어내고 능선을 만나면 능선을 파헤칠 듯 살벌한 소리가 온산 가득하다. 바람은 살불살조(殺佛殺祖)하라 했던 임제선사처럼 호통을 치고 있었다.


‘내어 놓아라-’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가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거센 바람이 쌓인 눈을 산등성 허공으로 냅다 집어 던지며 큰소릴 질러댄다. 얼어버린 눈가루가 하늘높이 풀풀 날아가고 산도 잔뜩 웅크린 채 덜덜 떨며 추위를 달래는 모습이다.



 출발할 때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아침 기온이 영하 5-6정도 될 것이라고 예보했었다. 통상 풍속이 1m/sec씩 증가할 때마다 체감온도는 1-1.5도씩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풍속이 대략 10m/sec 수준임을 감안하면 체감온도는 적어도 영하 15도 쯤 될 것 같다.


 제상에 올려놓았던 감(柿)도 얼어 凍柿(?)가 되었고, 모자 끝으로 흘러내린 땀방울은 맑고 투명한 고드름이 되었다. 귀밑으로 흐른 땀을 훔쳐내니 서걱이는 얼음조각이 잡혔다.



 멀리 능선마다 몰아친 눈은 상상을 초월했다. 멀리서 보면 산꼭대기 테뫼식 산성(山城)처럼 능선위로 바람에 쓸린 눈이 쌓이니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하얀 성(雪城)이 되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그러나 추위 때문에 그런 절경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대단한 추위와 적설량이다.


 우리는 성 밟기(踏城)를 하는 아녀자들처럼, 부항령에서 이곳까지 무려 10여km를 아름다운 설성(?) 답성 하듯 걸었다. 그러나 눈길은 수시로 끊기고, 빠지고, 넘어지고 산행속도가 생각보다 늦어진다.  짧은 겨울 해를 가늠해보면 무엇보다 저녁 걱정이 앞선다.



 지리산을 출발 할 때부터 넘나들던 대간 길은 이제 전라도 땅을 벗어나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경계가 대간 길이 되었다.


 삼도봉에서 동북방향으로 1,123 무명봉을 지나 비교적 평안한 능선을 타고 밀목재(980m) 안부에 내려서니 허기가 밀려온다. 아직 시간상으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눈길을 헤매다 보니 체력소모가 많은 탓이리라. 아직도 남은 거리는 10여 km, 이대로 가면 야간산행을 피할 도리가 없다.



 한동안 뜸했던 허리 통증이 다시 몰려온다. 진통제를 꺼냈으나 수통마개가 꽁꽁 얼어붙었다. 날씨는 추워도 몸은 물을 원한다. 4년 전에 다쳤던 왼쪽 발목과 오십견이 찾아 온 오른쪽 어깨도 시려온다.


 몸이란 본래 마음에 앞서 세상과 맞부딪치는 직관을 느낌으로 ‘모은다’ 하여 ‘몸’이라 했던가. 몸은 그동안 세상과 부딪히며 쌓였던 모든 흔적들이, 그 통증을 기억해내며 신음소릴 내고 있는 것이다.


 몸은 마음과 다르게 힘들 때마다 아프다고 곧잘 엄살을 피운다. 그러나 소리 없이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마음은 아프다는 소리도 못한다.


 그럴 때마다 산행 경험상 몸을 시켜서 큰소리라도 질러대야 위로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높은 산이라면 소리치긴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요즘은 산에 올라 소리조차 함부로 지르게 못하게 하니 이젠 갈 곳이 없다.


 그러나 그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숲에 사는 짐승들이라는 것은 본래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소리에 익숙해졌을 터인즉,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그것도 어찌 보면 자연에 대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과잉반응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회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화주봉 앞 능선 암봉(1,172m)에 올라서니 지는 해는 멀리 덕유산 향적봉 넘어 가고 있다.


 상황이 바쁘다 해도 석양이 만든 붉은빛 하늘금은 엄청난 유혹이다. 오늘따라 사위가 붉게 물드니 대원들 얼굴조차 붉어진다. 이제 막 기울기 시작하는 석양은 기약함이 없어 아름답다 했던가. 고난 끝에 만난 절경이다. ‘해는 지고 돌아갈 길이 너무 멀구나’.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고 보니 마음만 급해진다. 어둠은 산비탈을 슬금슬금 내려오기 시작했다. 화주봉(1,207m)까지는 다시 눈길 오르막 야간산행이다.


 무릎까지 쌓인 흰 눈이 최소한의 어둠을 빛으로 치환해주며 눈길을 밝혀 주었다. 다행이도 보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둥근달이 하늘 높이 두둥실 솟아오른다. 눈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다. 月白 雪白 天地白하니 道絶 人絶 心路絶 하네...


 온 천지가 하얀 눈빛이니, 길도 사람도 끊기고 마음도 끊어지는가.


 그나마 달그림자로 키운 겨울나무들이 도열하듯 늘어서서 밤길을 안내한다. 이렇게 밤 눈길을 걸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중학교 때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실로 오래, 대략 삼십여 년 만의 일이다.


 오늘 구간거리는 50여리, 산행은 벌써 12시간을 넘어서고 있다. 아직 1시간 이상을 더 가야 한다. 그렇게 먼 길도 아닌데...적설량이 많고 혹한에 이제 어둠까지... 걱정이 앞섰는지 모두들 말을 잃는다. 어둠이 내리니 바람이 잠잠해진다. 그러나 추위는 옷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침묵(沈黙)인가, 아니면 묵언(黙言)인가, 입을 닫으면 가슴이 말을 한다 했던가. 종일 거센 바람과 추위 속에서 대원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산행에서 육체의 피로는 곧잘 묵언의 빌미가 되곤 한다.


 ‘말’이란 본래 ‘마음의 알’이다. 예로부터 그 속엔 성근 씨가 있으니 조심하라 했다. 열매도 익어야 씨가 되는 법이니, 말이 많으면 신심(信心)이 굳지 못한 법이라며, 운수행각(雲水行脚)을 떠나는 스님들은 묵언정진(黙言精進)을 수행정진의 첫째 방편으로 삼곤 했다. 그러나 지금 몸이 지친 대원들은 그런 수행이 아니고 몸이 지쳤으니 그냥 걸어갈 뿐이다. 멀리 우두령(牛頭嶺)을 지나는 차량불빛이 어둠속으로 길을 낸다.


  옛날 같았으면 소가 끌던 수레가 넘어갔음직한 고갯길인데, 매를 맞던 소 대신 이젠 차량들이 눈을 부라리며 소릴 내지르며 넘어가고 있다.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 살가죽만남아 북이 된 소의 /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 한다 (소가죽 북, 부분. 손택수)



 멀리 우두령을 오르는 자동차 소음이 반갑게 들려왔다. 우두령을 넘으면 이랴 이랴- 우마차를 끌었던 소등에 얹혀 짐받이가 되었던 ‘길마’가 ‘질매’로 발음되는 질매재도 있으니, 우두령은 자연히 소와 관련된 지명을 얻은 것이리라.


 대원들은 김천과 영동을 잇는 우두령에 도착, 배낭을 내려놓고 먼 산행을 끝낸 감회가 새로웠는지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어때 한 십리길 더 가지 -’


모두들 화들짝 웃는다. (06. 1. 7일)



 


글, 사진 / 조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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