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무릉선원 두타동천이라
댓재 - 백복령(1)27.5km

대간산행을 시작한지 벌써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한다.
엊저녁 뉴스에 강원북부 폭설예보도 있고 해서 은근히 폭설을 기다렸지만, 산행거리가 80여리나 되고 보니 또 다른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삶에 있어 걱정은 그림자와도 같은 것, 그때마다 훌훌 털어내고 길을 떠나면 마음은 새털같이 가벼워진다. 그 또한 산 꾼들이 즐겨하는 두타행이 될 것이다.
석수들이 돌부처를 조성 할 때 ‘돌에 상(像)을 새겨 넣는다’ 하지 않고, 필요 없는 부분을 ‘털어낸다’는 표현을 한다. 그렇게 마음속의 탐욕과 집착을 털어내고, 오직 일념으로 수행에 정진하는 것을 두타(Dhuta)행이라 했다.
상행걸식(常行乞食), 수일식법(受一食法), 단좌불와(但坐不臥) 절양식(節量食) 재아난고처(在阿蘭苦處) 단좌불와(但坐不臥).....
그러나 우리 같은 중생들에게 있어 두타행(頭陀行)은 꿈과 같은 일이다.
떠나되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되 살아간 것 같지 않은, 이승의 삶을 보상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듯, 두타산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하는 산이다.
산크리스트어로 두타(dhuta)는 ‘버리다’ ‘비우다‘ 뜻이다. 두타행이라 함은 속진을 훌훌 털어버리고 길을 떠난다는 뜻이리라. 두타산도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떠난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서 인가, 댓재에 올라서니 동해바다 품새가 한없이 넓고 검푸른 빛 바다는 금방이라도 넘칠 듯 백파로 밀려왔다.
망망대해(茫茫大海), 바다는 너무 넓어 말이 없는가. 산은 너무 높아 말을 잃었는가. 하늘과 땅 사이엔 길을 잃은 싸락눈이 바람을 몰고 다녔다. 소리만 들어도 어깨가 움츠러든다.
산신각이 입산인사를 하라 한다. 두타영산지신(頭陀靈山之神), 산신도 추위탐을 할까, 모를 일이다. 목통령을 지나 1243봉 쯤 올라서니 적설산행이 펼쳐지며 설화가 만발했다. 겨울을 알리는 서설(瑞雪)이다.
이렇게 눈이 쌓이는 것으로 또 한해가 가고... 완만한 능선 길에서 3 시간 가까이 바람맞이를 하니 두타산(1,353m)이 정상을 내준다.
마음을 ‘비운다’ ‘내려놓는다’함은 산행에선 어려운 말이 아니다. 그냥 산을 걷기 만해도 된다. 걷는 동안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땀방울만 느껴도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속진을 말끔히 털어 내준다.
의학적으로도 가장 빠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운동으로 흘리는 땀이 최고의 명약임을 얘기하고 있다. 찜질방에서 흘린 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렇게 흘린 땀방울이 시원한 바람으로 느껴질 때 몸은 쾌감으로 부르르 떤다.
아주 쉽고 단순한 행위임에도 사람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뿐이랴, 사람들은 스트레스 해소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돈까지 들여가며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타산은 무릉계곡에서 보면 첨봉(尖峯)의 골산(骨山)이나, 댓재에서 오르니 부드러운 육산(肉山)의 모습이다. 대신 편한 발길이 되었다.
무릉계곡에서 올라보면 두타산(頭陀山)은 그 힘듦을 속된 말로 이름 그대로 ‘골 때리는’ 산이다. 그러나 풍광을 놓고 보면 백두대간 중에 숨겨놓은 보석과도 같이 잘 생긴 산이다.
85년인가, 날씨가 무척 추웠던 겨울이었다, 첫 두타산행 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역에 하차, 덜컹거리던 시골버스로 무릉계곡을 들어섰을 때 들려오던 두타산 바람소리는 아직도 귓전을 맴돌고 있다.
차가운 금속성 바람소리와 계곡 맑은 물소리, 새벽 달빛에 날카롭게 반사되던 얼음이며 거센 눈바람이라도 부는 밤이면 시인묵객들이 그토록 듣기를 원했던 설야송뢰(雪夜松籟)가 그득하던 골짜기, 그리고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추폭포와 쌍폭이 숨어 있는 계곡과 문간재에 올라 바라 본 풍경은, 그곳이 바로 선계(仙界)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선 전기 4대 명필 봉래(蓬萊)양사언(楊士彦)은 삼화사 아래 1500여 평,무릉반석 위에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듯 호쾌한 필체를 남겨놓기도 했다.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그 뿐이랴, 매월당 김시습도 다녀갔으며,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인지라 죄수를 잡으러 왔던 토포사(討捕使)들도, 이곳에 들러 너럭바위 귀퉁이에 놓칠세라 자신들의 이름 석자를 새겨놓기도 했다.
두타동천(頭陀洞天)이라-, 하늘에서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무릉계곡의 절경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를 지낸 김효원(金孝元. 1532-1590)은 두타산일기에서 천하의 산수로서 이름난 고을은 영동만한 데가 없고, 영동(嶺東)의 산수로는 금강산이 최고이며 다음이 두타산이라, 그는 두타산을 유람하고 ‘귀로로 접어들어 등을 지고 가노라니 마치 가인과 이별하는 것과 같아 열 걸음마다 아홉 번을 돌아보며(復尋歸路 轉以背之,若別佳人 十步而九顧焉)’ 무릉계곡의 절경을 아쉬워했다.
두타산을 처음 찾았을 때 필자의 심경도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두고 온 풍광을 잊지 못해 매년 겨울이면 두타산을 찾았었다. 그렇게 10년 이상, 무릉계곡은 필자의 발길을 불러들이곤 했었다.
산세가 험한 만큼 두타산은 피란처가 되기도 했던 산이요. 산계곡마다 기도처 또한 많은 산이다. 그리고 이곳 삼척이 고향인 이승휴는 늦게 관직에 나갔음에도 곧은 성품으로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다가 충렬왕 때 낙향하고 만다.
그는 쉰음정산(五十井山) 아래 천은사(天恩寺)에 머물면서, 우리나라 역사가 단군을 시조(始祖)로 중국과 대등한 역사와 문화를 이룬 고유민족임을 대서사시로 읊은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했으며, 이 땅의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창제하기도 했다. 해 뜨는 나라 ‘조선’이라, 좋은 이름 아니던가.
산세가 험한 만큼 전략적 요충지로 임진왜란은 두타산성에서, 가깝게 6.25동란 때도,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계곡에서 피를 흘려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골짜기다. 그런 연유로 무릉계곡은 그 지명조차 피내골, 삼화사 앞 소(沼)가 피소(血沼)로 불릴 만큼 한이 쌓인 계곡이다.
산도, 나무도 사람을 닮아 상처는 보듬게 마련인가.
두타산성 위쪽 능선으로 늘어 선 아름드리 적송은 수 십 년 전에 불탄 흔적과 60년대 송진 채취 시 남겨진 상처를 보듬고 거센 바람 속을 힘들게 견뎌 온 모습이다. 소나무는 마치 사람인 냥 상처가 난 쪽으로 허리를 굽힌 모습으로 서있다. 어찌 나무뿐이랴, 두타산도 저 아래 계곡에서 숨져간 원혼들을 풍광으로라도 달래주고 싶었던지, 무릉계곡은 금강산아래 가장 아름다운 천하제일경(天下第一景)을 품고 있다.
두타산에서 박달령까지 내려 온 만큼 올라가면 청옥산(靑玉山)이다.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의 일곱 가지 보석 중 하나인 청옥은 푸르고 투명한 사파이어를 의미한다. 산 이름조차 보석이니, 계곡을 흐르는 푸른 물빛과 절경은 이미 백두대간에서 보석이 되고 옥수가 되었다.
그리고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이곳 산세와는 다르게 부드럽다. 마치 옷을 걸어 놓은 횃대처럼 휘어졌다하여 의가등(衣架嶝)이라 불리는 능선이다. 그 횃대에서 옷이 걸릴만한 중간지점이 박달령이다. 그곳에서 계곡을 타고 하산하면 쌍폭과 용추폭으로 이어지고, 계곡 왼쪽은 청옥산에서 명당자리가 많다고 알려진 학등이요, 오른쪽은 두타산성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능선길이다. 그러나 박달령을 오르는 계곡은 폭우로 유실된 후 아직도 출입이 통제된 상태로 남아있었다.
산행 5시간여 만에 청옥산(1,403M)정상에 섰다.
푸른 옥 대신 흰 눈이 정상을 덮고 있으니 청옥산은 커다란 백옥(白玉)을 머리에 인 듯 차가운 바다 바람이 빗어 낸 설화가 하얀 꽃밭을 일구었다.
산이 1000m 이상 높고 영하로 내려가니, 바람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말 그대로 풍설화(風雪花)다.
산행은 두타, 청옥을 올라서니 마치 산행이 끝난 느낌이지만, 거리상으로 걸어 온 길은 고작 9km, 아직도 남은 거리는 50여리이다. 굳이 걱정을 앞세울 필요는 없지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통증이 몰려온다.
2년 전 민주지산 눈길에서 다친 왼쪽 무릎이 또 나쁜 기억을 일깨우고 있다. 몸은 잊을 만하면 오래된 수첩 꺼내 들듯 그 통증을 기억해낸다.
기억이란 꼭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몸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가 그 때마다 내게 통사정을 해온다.
‘주인님 이제 제발 그만 쉬어주세요-’ ( 07. 12. 15-16 )
글 · 사진 조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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