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차갓재 - 벌재구간

눈 내리는 산중에서 침묵을 익히다. (차갓재 - 벌재 13.2km)

19.차갓재 - 벌재구간

눈 내리는 산중에서 침묵을 익히다.
(차갓재 - 벌재 13.2km)


밤새 내리던 비가 기온이 떨어지며 눈으로 변해갔다.


출발부터 걱정을 했는데, 얼어붙은 길에서 버스가 갈지자로 미끄러지는 순간, 걱정은 현실이 되면서 대간산행의 어려움이 판단을 헷갈리게 한다.결국 여우목 고개에서 버스를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문경에서 택시를 불러 차갓재 안생달 마을에 도착하니, 계획보다 무려 2시간이나 늦어졌다.






▲ 눈 내리는 산중에서 침묵을 익히다.

ⓒ 뉴스울산


차갓재(756m)는 백두대간 남한 구간의 중간지점이다. 이정표엔 좌측 하늘재 방향은 ‘지리산’이요, 우측 황장산 쪽은 ‘백두산’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호연지기(浩然之氣), 가슴을 열고 보무도 당당하게 우리는 지금 이정표를 따라 지리산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남쪽 지리산에서 북쪽 백두산이라 ! 생각만 해도 통쾌한 일이 아닌가. ‘白頭大將軍‘ ’地理女將軍‘ 두 장승도 우리들의 장도(壯途)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차갓재에서 황장산(1,077m)까지 2,4km, 먼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험한 바위들이 숨어있는 암릉 구간이다. 더구나 엊저녁부터 내린 눈으로 길이 얼어붙어 미끄럽기 그지없다. 밤새 버스에서 시달린 탓으로 몸은 무겁고 발길은 힘이 없으니 곧잘 미끌리며 넘어지기 일쑤다.


더구나 눈이 쌓인 산길 오르막 비탈길은 서두름이나 조급함을 허락하지 않고 발길을 잡고 늘어진다. 그럴수록 바빠지는 건 마음뿐이다. 산 아래 도착 할 때까지만 해도 수런대던 대원들 목소리에 가쁜 쇳소리가 묻어나며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산에서 오르막은 언제나 침묵과 동의어다. 사람들이 힘들어 하면서도 산을 찾는 이유는 산이 말이 없기 때문이라지만, 숨소리가 거칠어지니 침묵할 수밖에... 운수행각을 떠나는 스님들의 수행방법이 묵언정진(黙言精進)인 것을 보면, 스님들은 늘 오르막을 걷는 사람들인 것 같다.


산행출발 1시간여 만에 묏등바위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 구간 중 가장 험한 코스다. 로프는 걸려있지만 바위는 이미 얼어붙어 미끄럽기 그지없다. 발을 자꾸 헛딛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거센 눈보라가 흩날리며 앞을 가리기 시작한다. 묏등바위에 올라 멀리 하늘을 보니 성근 눈발이 하늘 가득 쏟아져 내린다.


저 많은 눈들은 어느 하늘가에 숨어 있다가 이렇게 한꺼번에 소리치며 몰려오고 있는 것일까. 오늘 산행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에서 드는 불길한 예감이란 경험상 적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작부터 왠지 불안감이 몰려왔다. 황장산(黃腸山. 1077m)은 황장목이 산 이름이 되었다.


곰솔(黑松)이 일본을 대표하는 소나무라면 적송(赤松)은 그 생김새조차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닮은 이 땅을 대표하는 소나무다. 이곳에서 적송의 다른 이름은 황장목(黃腸木)이다. 질 좋은 적송(赤松)이 많다 보니 산 이름도 황장산으로 불렸다. 산세가 까치집같이 생겼다하여 옛 이름은 작성산(鵲城山)이다. 골기(骨氣)를 감춘 정상에는 바람도 숨을 죽이고 있어 잠시 몸을 맡기기가 좋았다. 날씨만 허락한다면 소백산도 지척인데... 가까운 도락산과 황장산만 간신히 조망되었다.


신년 들어 첫 산행인지라 황장산에서 시산제를 올렸다.


‘백두대간종주’ 이제 겨우 절반을 온 셈이다. 쉽게 생각해서 걸어 온 만큼 더 걸어가면 된다. 그렇다면 그 길의 끝은 어디쯤인가, 그리고 언제 끝이 나는가. 그러나 대간 길은 아직도 멀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시산제란 어찌 보면 산행하면서 느끼는 자신의 소리를 듣는 의식이다. 이렇게 산에 엎드리는 것은 간절한 발원(發願)이기보다는, 그냥 내 자신을 산 앞에 내려놓고 싶은 하심(下心)의 발현이다. 그리고 지금 걷고 있는 산행에 대한 감사이며, 조금씩 산을 닮아가고 싶어 하는 자신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황장산(黃腸山)은 수간에 송진이 배어들어 재색(材色)이 마치 뱃속의 누런 창자 같다 하여, 황장목(黃腸木)이라 불렸던 적송이 창궐했던 산이다. 황장목은 임금이 죽었을 때 관을 만들었던 질 좋은 소나무다. 물론 대궐이나 큰절의 경우 대들보나 기둥의 70%는 적송을 사용했으며 나머지는 느티나무 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조 숙종 때 강원과 경북지역 60여 곳에 질 좋은 소나무가 자라는 산을 왕실에 숯을 공급하는 향탄봉산(香炭封山)과 송홧가루를 생산하는 송화봉산(松花封山), 종묘나 서원에 사용 할 위폐용 밤나무를 생산하는 율목봉산(栗木封山), 그리고 사찰이 관리하던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 출입조차 엄격히 통제해온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이곳 동로면 옥수동도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세워 민간인 출입을 금지시킨 곳이다. 권세 있는 사대부가 아니면 함부로 질 좋은 적송으로 집을 지을 수 없도록 나라에서 관리하기도 했다.


그 탓으로 이제 그 질 좋은 황장목은 모두 베어지고 없다.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등이 굽고 상처투성이인 소나무 몇 그루가 남겨졌을 뿐, 온난화가 아니더라도 산은 이미 활잡목으로 식생이 천이(遷移)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욕심 탓이다. 생태학적으로 소나무는 양수(陽樹)로 욕심이 많은 나무다. 햇살이 부족한 곳에서는 살 수가 없다. 산림이 혼합림의 경우 그 자리를 음수(陰樹)인 참나무한테 조금씩 빼앗기고 마는 것이 자연생태계의 법칙이다.


그리고 소나무는 자기 곁에 다른 나무들이 곱게 자라는 것을 그냥 지켜보지 못한다. 방향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를 방출하여 산림 내 공기정화는 물론 나쁜 균의 생성억제와 살균작용까지 있을 뿐 아니라, 뿌리에선 갈로탄닌(Gallotannin)이라는 타감물질(他感物質)이 생성되어, 하층식생까지 못살게 하니, 결국 자신도 산에서 쫓겨나는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숲은 오래 전부터 ‘더불어 살아야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꼭 사람 욕심만 탓 할게 못되는 나무가 소나무다.


황장산에서 저수령까지는 약10km, 적설량을 가늠하면 결코 쉬운 거리가 아니다. 시산제를 지내고 감투봉(1,030m)에 오르니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도록 폭설이 쏟아져 내린다. 감투봉아래 내리막길은 우회하는 난코스다. 폭설로 없어진 눈길을 찾던 산행대장이 십여 미터 바위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순간적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그냥 바라만 봐야했다.얼어붙은 바위에서 미끄러지면서 우측 대퇴부 쪽이 나무 등걸에 찍혀 무려 한 뼘이나 찢기는 중상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아- 어찌하여 저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


내가 봐도 참으로 한심한 질문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최선의 조치라는 것이 압박붕대로 응급처치를 한 후 대원을 붙여 가까운 생달리로 하산시키는 방법 외엔 대책이 없었다. 산행을 어찌해야 하나. 그러나 누구도 선뜻 의견을 내지 못한다.


‘그래도 산행은 해야 한다’


대원들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황장재에서 중식을 하기로 했다. 머릿속은 온통 부상당한 산행대장 생각이었지만 몸은 밥 대신 술을 원했다.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갈증으로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


‘눈물은 밑으로 떨어져도 술잔은 올라가더라.’


상갓집 문상 때처럼 끝 모를 걱정으로 마음은 무거워졌지만, 손은 어느새 술잔을 탐하기 시작했다. 어찌해야 할까 보다 갑자기 벌어진 현실을 쉽게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 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손은 자꾸 잔으로 갔고, 뱃속의 허기를 채우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가증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것도 바보처럼 입으로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문경의 산들은 결코 높은 산이 아닌데... 미끄러진 것이다. 문제는 험로와 암릉을 숨겨놓은 폭설 때문이다.


눈발이 다시 굵어지며 하늘가득 쏟아져 내린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도록 시야를 가린다. 그리고 생각은 백지상태와도 같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은 온통 생달리로 하산시킨 산행대장 생각뿐, 이럴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침착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산에서 긴급한 상황 일수록 서둘지 말고 긴 호흡을 해보라 했다. 그래 잠시 쉬며 먼 곳을 바라보자. 하늘에 온산 가득 눈만 내리고 있었다.


‘강설(降雪)은 원경(遠景)이라‘


뜬금없이 눈 내리는 풍경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렇게 빼곡히 쏟아져 내리는 눈발을 바라본 것도 실로 얼마 만이었던가, 나도 모르게 속으로 탄성이 울려왔다.


‘아- 아름답다!‘


경험상 산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예고 없이 아주 짧은 순간에 왔다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가.






▲ 눈이 내리면 산은 침묵에 빠진다

ⓒ 뉴스울산


황장재에서 벌재까지는 약5km, 지금 같은 기후조건이라면 산행구간을 저수령에서 벌재로 산행거리를 단축해야 한다.


1004봉 능선 치마바위에 앉아 남은 소주로 몸을 녹이며 일정을 가늠해보았다. 누구하나 앞일을 얘기하려 들지 않는다. 대책이 없다는 뜻이리라.


더구나 감투봉에서 추락한 산행대장의 상태며, 여우목 빙판 고갯길에 세워둔 버스까지 이동방법도 난감했다.


심리학자 ‘발레리오 알비세티’는 살면서 앞선 걱정이 실제로 이뤄지는 경우는 1할도 안 된다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걱정은 실제로 발생하기도 전에 일어날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잘못 된 믿음 때문이라 한다.


예수님도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라,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 하니라‘ 그런 믿음을 갖고 살면 감당할만한 고통만 주신다고 위로를 했다.


지금 이렇게 막막한 산중에선 그 말이라도 믿고 싶다. 그러나 말처럼 쉽게 안 되는 것이 믿음이요, 걱정이다. 대원들은 말을 잃었다. 그렇게 산을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희뿌연 하늘로 어둠이 옅게 쌓이기 시작했다. 겨울 산의 어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눈은 계곡으로 하염없이 쌓이고 어둠까지 드리우니 산은 정적 속으로 빠져들며 모든 것이 멈춰버린 느낌이다.


누군가 침묵은 소리 없는 적막이 아니라, 어느 대상을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침묵’이라 했다. 우리도 지금 눈 내리는 산중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침묵을 익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눈 속에 갇힌 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한순간 모든 것이 잠시 멈춰서 버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저렇게 빈틈없이 내리던 눈도, 바람도, 산도 한 순간 침묵 속으로 묻혀 지고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기로 했다. 모두들 말조차 잃고 서로를 바라보기만 한다. 답답함도 그렇다고 막막함이나 포기도 아닌, 다만 더 이상 기댈 만 할 것도 없는 침묵의 상태를 성서에선 히브리어로 ‘가난(ebiyon)‘이라 했던가. 그리고 그 속에 지혜가 있음을 얘기했다.


독일의 영성 사상가 에크하르트 톨레는 ‘모든 것이 잠시 멈추고 고요해질 때 그곳에 바로 지혜가 있음‘을, 그리고 부처님은 그 침묵의 자리를 ‘반야의 지혜‘로 보았으며, 예수님도 ’심령이 가난한자 복이 있으라‘ 했다.


테레사 수녀는 그런 침묵을 ’하나님의 언어‘로 보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 철학자 왕통(王通)은 ‘배우는 것도 쉬라’, 지학(止學)을 얘기 했다. 쉼도 배움이요, 지혜가 되니 차라리 버리고 쉼으로 얻으라 했다.


노자(老子)는 어리석음이 앎의 으뜸이요(知不知上), 모르면서 안다고 함은 병(不知知病)인지라, 삶의 불안은 무지에서 오지만, 불만은 앎(知)에서 나오니 멈추고 그만 쉬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은 느낌표가 아니라 쉼표가 되는 계절이다.


삶은 앞으로 나가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멈춘(止)후에야 비로소 멈추지 않고 나아감(不止)을, 깨닫는 것이 살아가는 모습 아닌가 싶다. 그런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산이 겨울 산이다.


 


그러나 이런 때 일수록 마냥 좋아보이던 산도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산은 산, 나는 나 일 뿐... 길은 언제나 냉정하다. 길이란 힘들수록 나를 더 힘든 곳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겨울 산이다. 무서우리만큼 냉정한 것이 산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빨리 벗어나는 수밖에...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눈 속을 뒹굴면서 하산을 재촉했다. 그렇게 서둘렀음에도 벌재에는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벌재에 도착하니 머릿속에 있던 걱정은 이미 현실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 탓인지, 급히 서둔 하산 탓인지 목이 말랐다. 그러나 배낭 속 수통을 꺼내기가 싫었다. 아니 몸이 귀찮다고 한다. 발도 시려오고 흘린 땀이 마르면서 차가운 밤공기는 추위까지 몰고 왔다. 턱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통화조차 안 되는 산행대장의 상태며 여우목에 세워둔 버스까지 이동 방법 등, 걱정만 첩첩산중이다.


 


‘대책이 없다’는 말은 이렇게 앞뒤가 꽉 막힌 상태에서 전혀 어찌 해 볼 수 없는 상황을 꼬집어서 한 말인가. 적어도 이번 산행은 ‘미쳤거나, 어리석거나, 무모한 짓이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찌 할 것인가?


‘대책 없는 산행, 대책 없는 백두대간, 대책 없이 한심한 우리들...’


생각만 해도 참으로 무모한 산행이었다. 그 무모함을 자초한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누굴 탓하거나 나무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 종주를 중단한다는 것은 실패 할 기회조차 포기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산행의 중단이나 포기, 그것은 있을 수 없다. 어쨌든 다시 산행 출발점 여우목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그렇다면 지금 서있는 고개는 단양팔경 어디쯤 될까.


아는 것이라곤 출발 전 등산용 지도에서 언 듯 본 고개 이름밖에... 여름이면 풍광이 좋은지라 피서객이 제일 많이 몰린다는 상선계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것뿐이다.


벌재는 이제 어둠조차 차가운 바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걸어 온 산행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사실 오늘 같이 퍼붓듯 쏟아지는 폭설을 뚫고 아무 탈 없이 고갯마루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산행은 이미 축복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감투봉 아래서 산행대장의 허벅지를 뚫고 시퍼런 굵은 핏줄이 보이도록 파고 들어간 상처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온 몸으로 소름이 끼쳐왔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절망과도 같은 두려움, 손이 덜덜 떨렸다.


아 - 어찌 할 것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퍼런 핏줄이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그래 이 고개만 넘으면 된다 -’ (07. 1. 6 )


글/조관형  


강민수 기자


 


 


 

강민수 (nu_kms@nun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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