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피기는 힘들어도 지기는 쉬운 것은

11. 피기는 힘들어도 지기는 쉬운 것은

피기는 힘들어도 지기는 쉬운 것은


(추풍령 - 지기재 29.3KM)



피기는 힘들어도 지기 쉬운 건 봄꽃이라-‘


볼(見)것이 많아 ‘봄’이 왔다고 여기저기 난리들이다. 산천을 깨우며 수런수런 꽃이 피어나고... 산길을 걷다보면 봄은 색깔로 먼저 온다는 말이 맞다.


이래저래 봄 산은 꽃들로 떠들썩하다. 꽃은 그냥 홀로 피지 않는다.


진달래, 생강나무, 산수유, 떡버들, 찔레꽃... 철쭉 꽃망울은 아직 이른가.


한결같이 빨갛고, 노랗고, 하얗고 봄은 원색적이다.


꽃은 색깔로, 계곡은 물소리로, 능선은 바람으로 봄을 풀어 놓으니, 봄은 그냥 오지 않고 더불어 온다. 피기는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라 했다. 봄은 저산과 들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했나.



피기는 힘들어도 지기는 쉬운 것이 봄꽃이라



추풍령에서 속리산까지는 75km, 약 200여리길이다.


부지런을 떨어도 3-4일이나 소요되는 먼 길인데, 오늘 구간종점 지기재까지는 30여 km, 결코 쉬운 코스는 아니지만 다행이도 험하지가 않다.


‘속리산에서 남쪽으로 내려 온 산줄기가 화령과 추풍령이 되었고 시내와 산경치가 그윽하다. 모두 낮고 평평하여 살기에는 알맞으니 산이라 할 수 없다’ 擇里志의 기록이다. 말 그대로 비산비야(非山非野)형세니,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니라면 그 구분은 어떻게 할까.



영국의 지리 측량가는 그 산과 들의 경계를 1000피트(305m)로 보았으며, 미국의 기준은 2,000피트(610m)이다. 그런 잣대로 본 다면 오늘 산행구간 중 산(mountain)이라 이름을 얻은 것은 용문산(710m), 백학산(615m), 국수봉(763m)뿐이고, 나머지는 산세를 갖추었을 뿐 사실은 언덕(hill)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00m만 넘어도 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산림청 발표에 따르면 산은 4,440개요, 언덕은 4,714개로 전 국토의 65%가 산으로 분류되었다. 세계적으로 높은 봉우리가 모여 있는 히말리야에서는 7000m 이상의 봉우리에만 이름이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이름도 없는 무명봉이다.



통상적으로 산을 높이로 구분하면 해발 1,500m 이상을 아고산지대로 분류했으며, 2,500m가 넘으면 제한된 식물 외엔 살아갈 수 없는 수목한계선(Timber line)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히말라야의 수목한계선은 4,000m이다.


때문에 등산가들은 해발 5,000m 이상을 넘어서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신의 영역'으로 보았다. 그래서 일까, 세계의 지붕 히말리야 연봉을 단순히 높은 산봉우리가 아닌 ‘신들의 거처’로 불리기도 한다.


스위스 의사 앙리 뒤낭은 고도 7,500m이상을 ‘죽음의 지대’로 분류, 이 높이를 넘으면 신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생리적 한계로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곳이라 했다.


이는 산도, 몸이 아니라 영혼만 받아주겠다는 뜻이다.


정복이 아니라 산이 허락해야 오를 수 있는 곳이니, 등산보다는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산에 든다’, ‘입산(入山)’이라는 표현이 맞다.


그리고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은 대개 수목한계선 부근에서 생장한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거센 바람과 혹독한 추위 속에서 수 십 년을 견딘 나무들이니 결도 곱고 촘촘하여 소리까지 맑아졌으리라.



산행 들머리는 추풍령 마을에서 경부고속도로 공사 때 몸을 반쯤 잘라 준 금산(370m)으로 곧장 올라가야 한다.


사기점고개와 작점고개를 넘어 용문산(710m)을 올라서니, 북서쪽으로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는 고갯길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사람들은 그 고개를 ‘내륙 한양 천리 길‘의 중간지점이라 해서 ‘반고개’로 불렸다. 추풍령에서 상주시 모동면으로 넘어가는 신안리 반고개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부산에서 추풍령을 지나 보은과 청주를 경유하면 한양으로 가는 길이 문경새재를 우회하여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 했으니, 그 한양 길 절반이 이곳 ‘반고개’ 지명으로 남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럴 듯도 하다. 그 반고개를 넘으면 곧바로 상주 땅이다.



예로부터 경상도 땅에서 상주(尙州)는 큰 고을이었다.


‘백성들은 본래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 했다. 상주는 낙동강을 낀 비옥한 곡창지대인지라 물산(物産)이 풍부했고, 특히 삼백(三白)의 고장(쌀, 목화, 누에고치)으로, 신라시대에는 전국 9주(九州)로, 고려시대에는 8목(八牧)하나로, 조선시대는 경상도 감영(監營)이 설치되면서, 경주와 상주 머리글자를 빌어 ‘慶尙道라-’큰 고을 이름을 얻은 셈이다.


그리고 상주의 옛 지명, 낙양(洛陽)의 동쪽에 와서야 1,300리 물길이 ‘강다운 강이 되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낙동강(洛東江)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낙동강 칠 백리 뱃길’이라면 부산포에서 이곳 낙동나루까지를 말함이었고, 영남대로에서도 상주는 수운(水運)과 육운(陸運)을 연결하는 요충지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을이라 소개하고 있다.


그 뿐인가 ‘북쪽은 조령(鳥嶺)과 가까워 충청과 경기로 잘 통하고, 동쪽으론 낙동강에 연해있어 김해와 동래와도 통한다. 이는 육로로 운반하는 말과 짐을 실은 배가 남쪽과 북쪽에서 물길과 육로로 모여드는데, 이것은 교역하기가 편리한 까닭이라.’ 擇里志에 기록되어 있으니, 영남사람들 뿐 아니라 호남사람들도 한양을 가기위해 한번쯤 들렸던 고을이기도 하다.



용문산과 국수봉을 지나 큰재(305m)까지는 약18km, 족히 7시간이상 땀을 흘려야 한다. 산은 낮고 길은 숲에 갇히니 답답해지는 것은 마음이다. 오늘따라 황사가 대단하다. 눈이 뻑뻑해지고 목은 칼칼해진다.


큰재에 내려서니 고갯마루에 낡은 초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백두대간 능선 상에 유일하게 서 있는 옥성초등학교 인성분교로 이미 폐교 된지 오래된 건물 같다. 아이들은 모두 떠나고.... 작은 운동장 구석구석 맘껏 자란 나무들이 분교를 덮을 듯하다.



시골 초등학교 인성분교 출입문(門)을 제멋대로 자란 나무(木)들이 가로 막고 서있는(閑) 정경은 멀리서 봐도 한가(閑暇)로운 모습이다.


크기로 봐선 꽤 오래전에 심어 놓은 나무 같은데 몸짓이 커지면서 이젠 교문까지 막아섰다. 나무 옆으로는 개구멍과도 같은 틈새도 하나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곳은 아닌 듯하다.


텅 비어버린 운동장과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교실은 보기에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한적함이 가득하다. 낡은 세월조차 쉬어가는 분위기다.


요즘에야 ‘한가로움(閑)’이 삶의 화두(話頭)가 되었지만, 옛 선비들은 게으름을 경계한지라, 논어를 비롯한 웬만한 경전(經典)에도 없는 자(字)로 선비들 사이에선 언급조차 꺼려했던, 글자 그대로 한가로운 분교가 되었으니 그 모습이라도 오래 보존되길 바랬다.



심물상응(心物相應)이라,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릴 듣고 자란다고 했던가. 재잘거리는 학생들 목소리가 떠난 교실을 깨진 유리창으로 들여다보았다. 늙은 칡넝쿨이 문틈을 비집고 교실 구석구석까지 뻗쳐 들어왔다.


천장은 거미줄투성이고, 아이들 발자국 소리가 떠난 운동장은 풀숲이 된지도 오래, 낡은 풍경이 멈춰선 인성분교는 낮은 목소리로 ‘느림(閑)’을 얘기 하고 있었다.


느림은 쉼이다. 쉼은 정적이요, 멈춤이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곳,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는 분교는 가꾸지 않은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시 회룡재와 개터재를 지나 윗왕실재까지는 약 10km, 보폭을 늘려 잡아도 시간당 주행거리는 3km인데, 거의 4km 수준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쯤 되면 엄청난 산행속도다. 숨이 가빠온다.


영국의 과학자들이 전 세계 30여개 도시를 대상으로 연구한 보고서에 의하면, 현대인들의 걸음 속도가 10년 전에 비해 무려 10%정도 빨라졌으며, 그 원인으로는 스트레스를 첫째로 꼽았다.


우리도 이렇게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보니, 알게 모르게 대간 종주산행자체가 스트레스가 된 것 아닌가 싶다.



속도는 풍경을 지워버린다. 시원스런 공성면 낙동강 너른 들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산행에서 풍경을 잃으면 남는 것은 땀 냄새 뿐이다.


백학산(615m)에 올라서니 따가운 봄날에 찌든 몸 냄새가 역겹다. 자신의 체취를 냄새로 느낀다는 것은 고역이다.


지독한 냄새는 날 파리를 불러들이고, 몰려 든 날 파리는 귓속의 이명(耳鳴)처럼, 생각 속에 끼어든 번민처럼, 손을 휘둘러 쫒고 쫒아내도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낯선 땀 냄새와 끈질긴 이명, 그리고 지친 발걸음, 산행은 갈수록 힘들어 지고 길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만다.


그럴수록 걷는 것 자체를 즐겨야 한다. 지금 대원들은 발밑으로 들어오는 길을 런닝 머신처럼 걸어 내느라 정신이 없다. 그 쯤 되면 속도는 생각을 빼앗고 머릿속은 백지처럼 텅 비어간다.


걷는 동안 신체구조상 청각과 생각은 곧잘 공명현상(Resonance)을 일으키곤 한다. 귓속이 멍멍 해지면 머릿속도 하얘지고 걸음조차 헛딛게 된다. 그럴수록 모든 생각을 발밑으로 내려놓고,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하면, 산 꾼들이 찰나적으로 빠져들기 원하는 ‘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쯤 되면 걸을 때 마다 발뒤꿈치에서 쿵 쿵,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영혼의 소리인 냥, 머릿속까지 울리며 멍청해지니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비로써 얻은 한 순간, 무심(無心. Absentmindedness)이다.



백학산에서 개머리재까지는 십 여리길, 다시 구간 종점인 지기재까지 3km, 벌써 12시간 이상 지속된 산행이니, 오늘도 결코 쉬운 코스는 아니었다. 산이 낮다고 깔본 탓으로 고생은 몸이 대신 한다.


산이 낮으면 골도 얕다. 골(谷)이 깊어야 나무들도 맘껏 키를 키울 텐데, 산이 높지 않아 골(谷)과 속(俗)의 구분이 없으니, 출가를 한다 해도 찾아 올 사람도 없을 터, 사람이 그리워 매일 그림자로 내려오는 산도 없으리라.



왜 개머리 재라 했을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지명이 혼란에 빠뜨린다. 그러나 그조차 묻고 싶지 않다. 그만큼 봄빛에 지쳤다는 증거다. 다시 한 시간 여 만에 지기재에 도착하니 오늘 산행의 종점이다. 몸은 아프다며 제풀에 눕고 만다.



관세음보살이 양류관음(楊柳觀音)으로 현신(現身)할 때 왼손에 쥐었던 버드나무는 먼 길 떠나는 낭군에게, 내 젊음은 쉬 늙으니 빨리 돌아오라고... 버들잎을 따서 은근히 협박하는데 쓰였던 나무다.


연초록 잎을 내밀긴 화살나무도 마찬가지이다. 그 여린 잎이 부드럽고, 향 또한 독특해서 초식동물들이 다투어 탐했으니, 잎을 함부로 뜯어 먹지 못하도록 줄기를 화살모양으로 키운 나무다.


묘 등 위로는 갓 피어난 노랑제비꽃과 할미꽃, 그리고 하얀 쌀밥을 닮은 조팝나무와 복숭아도 꽃을 피웠다. 야생 복숭아(桃花), 어릴 적 ‘개복숭’이라 불렀던 나무다. 그 복사꽃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상향은 죽어서야 갈 수 있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비취빛 맑은 물이 흐르지 않으면 언덕너머 저 편, 유토피아 ‘샹그리라’가 아니듯 복사꽃이 없으면 ‘무릉도원’이 아니다.


본래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로 없다(ou-)와 장소(toppos)의 결합어로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한다. 무릉도원 역시, 살아서는 갈 수 없고 어디에도 없는 곳(無何有之鄕)임을 얘기하고 있으니, 산이 좋다고 발아래 현실은 외면하고 피안의 땅을 찾는 어리석음을 조심하라 했다. 애초부터 그런 곳은 없단다.


이렇게 허름한 시골집 울타리에 서있더라도 도화는 고혹적이고 요염한지라, 그 아름다움에 죽일 살(煞)을 붙여 도화살(桃花煞)이라 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봄날 아름답기로는 복사꽃을, 풍치로는 버드나무를 제일로 꼽았다.



모두들 그렇게 서 있는 자리에서 없는 듯 살아가고 있는 것이 풀과 나무들이다. 그렇게 이름 없이 살아도 있는 자리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전부다.


대간 종주산행도 거창한 구호 보다는 그냥 하늘과 바람, 그리고 산과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으로 걸어가면 된다.


종주를 마친 산 꾼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당대 큰스님이었던 승호스님과의 문답에서 ‘산색(山色)은 그대로 법신(法身)이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부처의 다함없는 법문(法問)이라.‘


산은 우리에게 그냥 물소리, 산소리, 바람소리나 들으며 걸어가라 한다.


(06. 4. 8일 )


봄은 꽃도 별이된다. 냉이꽃.

강민수 (nu_kms@nun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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