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조관형의 백두대간(32) - 흉고직경이라는 단어를 아시는지요

(구룡령 - 조침령 18.7km)

<연재>조관형의 백두대간(32) - 흉고직경이라는 단어를 아시는지요




ⓒ 뉴스울산

 


구룡령(1058m)는 홍천과 동해의 양양 이어주는 고갯마루다.


무엇보다 동해의 해산물과 내륙지방 홍천군 내면 농산물의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고개였으니 속칭 ‘바꾸미 고개’로 불렸다. 그리고 양양이나 고성지방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갈 때 넘나들던 고갯길이기도 하다.


고개가 험난하니 아홉 마리 용이 갈천 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고개를 넘었다는 속설과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고갯마루로 치솟아 오르다, 그 모습을 본 아낙네 고함소리에 이무기가 되고 말았다는 전설도 있지만, 아무래도 과거보러 길을 떠난 선비들이 구룡령을 넘다보니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영험함을 기대했던 간절함으로 얻어진 지명으로 보는 것이 좋아 보인다.



구룡령은 미시령이나 한계령보다는 산세가 부드럽고, 통행도 빈번했던 탓으로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개로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개다.


그런 이유로 2007년 12월에는 구룡령 옛길과 죽령, 토끼비리, 하늘재, 대관령 옛길, 문경새재와 함께 문화재청이 지정한 옛길 명승 중, 구룡령이 가장 먼저 ‘명승 29호’ 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아무튼 이른 새벽 어둠속을 몇 번이고 휘돌아 굽이치는 오르막길을 타고 장구목으로 불렸던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과연 산세가 험하기로 용이 나타날 만도 했다.



밤새 흔들리는 차안에서 시달린 탓으로 산행은 출발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몸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고, 눈도 반쯤은 감겨있는 상태다.


‘아 - 또 힘든 싸움이 시작 되는가’.


한바탕 욕이라도 퍼붓고 싶어진다. 주인이 좋아서 하는 일도 몸은 일단 거부부터 하고 본다. 몸은 우선 그 힘든 일을 싫어한다.


분명 내 몸임에도 몸은 생체적으로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유지하기 위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려 는 불수의근(不隨意筋) 속성을 갖고 있다.


이런 때를 산 꾼들은 몸이 산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초보자는 대략 1-2시간 정도, 숙련된 사람이라도 30분 정도는 길이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산행에서 낙오는 대개 이런 적응과정에서 오는 신체적 갈등에서 발생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산을 오르는 일이란,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sisyphos)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세이의 저자 호메로스는 시지프스를 가르켜 ‘인간 중에는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들의 비밀을 누설하고 제우스를 기만한 죄로 ‘세상에서 무익하고 희망 없는 일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없다’고 판단한 신들은 시지프스에게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라는 형벌을 내린다.


그러나 바위가 산꼭대기에 도달하면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 떨어지고, 다시 밀어 올리면 굴러 내려오고... 평생토록 그렇게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는 어찌 보면 이렇게 산을 오르내리는 우리들 모습과도 닮았거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힘들게 정상을 오르면 내려와야 하고, 또 다시 오르고...그렇게 멈추지 않는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처럼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산을 오르내리며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아 사서 이 고생 인가-’,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었다.


그것은 마치 죄를 짓고, 회개하고 다시 죄를 짓는 인간의 모습과도 닮았다.


사람들은 어차피 내려 올 길인데 무엇 하러 그렇게 힘들게 오르느냐고 하지만, 산행도 타고난 업보인가. 죄 많은 인간들의 모습인가. 짊어지고 가든,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가든, 아무튼 젊은 날 한 때는 산으로 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얼굴과 모자 끝으로 땀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그건 후회조차 할 수 없는 시지프스의 눈물과도 같다.


내 안의 시지프스는 늘 그랬다.


그렇게 반복해서 생을 일탈하고, 후회하고, 다시 길을 떠나고, 또 산을 오르는 시지프스의 형벌은 부조리한 시대를 거스르는 우상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등산의 매력에 빠진 이 시대의 시지프스 들의 모습을 살펴보라.


하나뿐인 목숨까지 걸고 고산등정을 하는 산 꾼들의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이미 현대판 ‘이방인(異邦人)’이 된 사람들이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 만큼, 나무는 굵기를 키운다.


그렇게 살아 온 날들을 연륜(年輪)이라 한다. 사람들은 그 연륜을 측정하는 단위로 흉고직경(胸高直徑)을 사용하고 있다. 글자 뜻 그대로 나무크기를 측정할 때는, 사람의 가슴높이(胸高)에서 굵기를 측정하니 흉고직경이라는 단위가 생긴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놓고 볼 때, 눈높이(頭高)도 있고, 허리높이(腰高)도 있을 텐데, 굳이 잣대(尺)를 들고 가슴높이(胸高)에서 나무의 굵기를 잰다는 사실이 그래도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슴높이...어찌 보면 세상을 가슴높이에서 보고 받아들이라(觀之以心)는 뜻이리라.


사람이 살아 온 내력이 얼굴에 숨어있듯 나무의 삶은 나이테에 고스란히 남게 마련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이테 생김새를 보면 수십 년 전, 가뭄이나 생육상태 혹은 화재까지 가늠이 되고, 심지어는 총알 같은 전흔(戰痕)도 훈장 인 냥 간직하고 있는 나무도 있다.


가슴에 남겨진 상처가 오래가듯, 나이도 가슴으로 먹어야 융숭 깊은 그늘이 생기는 법이라고 했다. 누구든 가슴으로 나무를 한번 안아보라. 혹자는 오래 된 나무는 정령(精靈)이 숨어있어, 그 기운이 전해진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숲속의 나무를 끌안고 있으면 그 느낌이 가슴가득 느껴진다. 아늑함과 청량감, 그것은 가슴속에 남는 상서로움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구룡령 구간에는 꼭 보고 싶은 나무가 있었다.


몇 해 전 한국산지보전협회 발표에 따르면 산림 보호차원에서 정확한 위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구룡령에서 단목령 구간에 흉고둘레가 가장 굵은 608.8cm인 피나무가 있고, 진고개와 구룡령 사이에도 608.2cm가 되는 피나무가 있다하니, 왠지 그 나무를 한 번 찾아보고 싶었다.


그뿐 아니라 단목령과 미시령 구간엔 518.1cm 신갈나무도 있고, 소나무로


는 문경 조령산에 522.5cm가 있으며, 옥돌봉 아래는 100.5cm나 되는 철쭉도 있다하니,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런 나무에 비해 백년도 못되는 우리네 삶을 놓고 보면, 정선 두위봉에 있는 주목은 1800살이요, 양평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400살,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나이는 1500살이다. 우리나라 전체로는 1000년이 넘은 나무가 20여 그루나 된다.


울창한 이곳 나무들을 바라보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곤 한다.


어찌 살아야 천년을 산다는 말인가 묻고 싶다. 산은 적어도 천년의 삶을 얘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 뉴스울산


구룡령(1013m)에서 조침령까지는 20여km, 산세도 수월하고 인적이 뜸한 탓에 제 모습을 맘껏 키운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 서있는 오 십 여리 산길이지만, 오르내리막이 많아 결코 쉽지 않은 구간으로 알려진 코스다.



그러나 산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다.


산행출발 시간 반 만에 칡넝쿨이 많아 갈전곡봉(葛田谷峰.1,204m)이라 불리는 봉우리에 올라 까치발을 떠보았으나, 나무들이 가로 막는다.


여름 산은 몸짓을 잔뜩 부풀렸다. 하늘을 뒤덮은 나무는 울울창창 길까지 막아버리니 바람조차 간신히 숲속을 비집고 불어온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힘차게 뻗은 능선은 가칠봉(1240m)과 구룡덕봉(1388m)을 일으키고, 이 땅에서 최후의 원시산림지대인 방태산(1436m)을 올려놓았으니, 북쪽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 길 남쪽은 인제군 기린면이요, 동쪽은 양양군 서면으로 산지사방 1천 미터나 되는 큰 산이 무려 30여개나 널려 있는, 말 그대로 험산준령이다.


다시 갈전곡봉에서 북쪽으로 몇 개의 능선을 넘어 왕승골 삼거리에 도착했다. 조경동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그 때 앞서 걷던 대원이 뒤로 멈칫 물러서며 본능적으로 소릴 지른다.


‘어 - 앗, 멧돼지- 멧돼지다!’


말 그대로 집채 만 한 멧돼지 한 마리가 엉덩이를 실룩이며 숲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대관령구간 때는 야행성임에도 새끼 서 너 마리를 몰고 다니던 배짱 좋은 놈을 보기도 했었는데... 혼자는 아닐 터, 주위를 살펴야 했다.


특히 잡식성이라 먹거리 걱정이 없는 멧돼지는 이제 이 땅에서 먹이사슬로 보면 최상위층 천하무적이다. 그러나 적이 없으니 천하가 적이 될 것이다.


‘당귀 있나 찾아봐라 멧돼지가 다니는 길엔 당귀가 많단다.’


당귀를 찾기에는 너무 이른 새벽인지라 머릿속으로만 그려 보았다.



아침가리골 고개 안부에 도착하니 멧돼지에 놀란 가슴을 달래기라도 하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저앉는다.


숲은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했다.


산 아래 계곡으로 내려서면 아침나절(朝)에 잠시 밭갈이(耕)를 할 만큼만 해가 비친다하여 조경동계곡(朝耕洞溪谷), ‘아침가리‘로 불리는 골짜기이다.


깊은 산간에 경작할 수 있는 작은 따비밭이 있어 ‘밭을 갈다’에서 유래한 것을 ‘가리’라 했으니 신산(辛酸)스런 삶의 흔적이 지명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아침가리-’ 아침가리라, 참 부르기 좋은 이름이다.


방태산 북쪽으로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를 사가리라 했으며, 내린천 최상류에 있는 살둔, 월둔, 달둔과 함께 ’삼둔(三屯)사가리‘라 하여 점봉산의 깊은 오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둔(屯)이란 비록 입구는 좁지만 안에는 펑퍼짐하고 넓은 구릉이 있어, 깊은 산골짜기에 둘러싸여 비록 외부와는 단절된 곳이지만 ‘사람이 살만한 둔덕’으로, 몸 하나를 온전히 의탁할 수 있는 길지(吉地)를 얘기 했다.


그래서 인지 조선시대 최고의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은 이곳 ‘삼둔 사가리’를 능히 목숨하나는 살릴만한 가거지(可居地), 비장처(秘臟處)로 꼽았지만,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워낙 깊은 산속이라 훗날, 일제 강점기 이후 일부 평안도 사람들이 풍수지리설을 믿고 이곳을 찾아와서 붙여진 피난처였던 것 같다.


그런 삼둔사가리 계곡을 아래에 두고 걷는 산길은 느낌조차 좋다.


이 땅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계곡을 두고 걷는 능선 길이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발걸음조차 가볍고 힘이 솟는다. 이쯤 되면 길은 걷는 맛이 느껴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예로부터 경(徑)이란 작은 길이나, 에둘러 가지 않고 곧장 가는 지름길을 얘기했으며, 삶에 있어서는 왕도(王道)나 첩경(捷徑)을 의미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란 각기 달리(各) 존재하는 다리(足)들이 따로 또는 같이, 걷는 길(路)을 통해 이루려는 길(道)이다.


그 길을 걸어가면 때론 걷는 것도 깨달음(行禪)이 되는지라, 쉬엄쉬엄 걷는다는 의미의 ‘책받침(辶)’부에 ‘머리수(首)’자를 올려 궁구(窮究)하여 지향하는 길(道)을 의미했으니, 산은 그걸 알고 오래 전부터 혼자가 아닌, 같이 걷는 길(路)을 내놓은 것인가.


대간 길은 갈수록, 아름다움은 가히 점입가경(漸入佳境)이 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장쾌한 백두대간을 한번 걸어보라’.


그리고 그 길(路)에서 길(道)을 물어 볼지어다.


그 길(道)을 장자(莊子)에게 물어본즉 도(道)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아니하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니 물을 수도 말할 수도 없음을, 노자(老子)는 그 이름조차 지을 수 없음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 길은 오로지 몸속에 남아있는지라, 걷는 것으로도 명상이 되고, 기도가 된다. 자기 앞에 놓인 길이 있다면 홀로 걸어 갈 뿐이다.



연가리골 갈림길 쉼터에서 우리도 잠시 바람맞이를 했다.


‘바람맞이‘ 이미 지나 온 길이지만 영동군 상촌면인가, 황악산 앞쪽으로 바람재라는 고갯마루가 있다. 지명 그대로 사통팔달(四通八達), 시야가 탁 트여 바람조차 거칠 것이 없는 고갯마루다.


그러나 이곳은 온통 원시림으로 갇혀 있으니, 바람이 세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지만 재미있는 우리말 지명이 많은 것으로 보면 바람이 대단했던 곳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구룡령 옛길은 동해 바닷가 해산물과 홍천의 농산물교환이 이뤄졌다하여 ‘바꾸미길’이요. 갈전곡봉은 칡이 많다하여 ’치밧(칡밭)골봉‘으로 불렸고, 연가리골에서 양양 쪽 56번 국도로 이어지는 능선갈림길은 ‘바람불이 삼거리’요, 그곳에서 다시 1시간여 거리엔 오뉴월 높새바람이 불면 바람세기가 황소까지 날려 보낸다는 ‘쇠나드리고개’가 있다.


쇠나드리는 진동리로 내려가는 세 물줄기가 길을 가로 막은 곳에 소를 방목했다하여 ‘쇠나드리’로 되었다하나, 진동리 깊은 계곡이 소를 방목할만한 곳은 아닐터... 황소가 바람에 날렸던, 소 나들이가 되었던, 모두 재미있는 우리말 지명이 된 셈이다.


높새바람이 황소를 날린다니 허 허, ‘牛笑 牛笑...’ 소가 웃을 일이다.’


그 것도 산의 일이다.



고맙게도 날씨는 한나절을 잘 참아주었다.


그러나 쇠나드리부터 굵어진 장맛비는 조침령까지, 십 여리길 내내 온몸을 흠뻑 적시며 몸을 무겁게 한다. 밤잠까지 설친 몸은 그 무게가 견디기 힘든지 게으름을 피운다. 그러나 몸은 차가운 빗방울로 생기를 받고, 발걸음은 힘을 얻는다. 살다보면 상처도 힘이 되듯. 때론 그런 무게감이 오히려 힘이 되는 역설이 길이요, 산이다.



고개가 높아 새도 자고(寢) 넘었다는 조침령(鳥寢嶺)은 고갯길이 험해 사람들이 고갤 넘을 때, 무리를 지어 자고 넘었다고 조침령(曹枕嶺)이라 불리기도 했다. 장정 육십 명이 모여야 넘었다는 남덕유산 아래 육십령(六十嶺)처럼, 이곳도 조침령(曹枕嶺)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산행 출발 10시간 만에 조침령에 도착 했다. 비교적 쉬운 산행이었다.



산에 있어 고갯마루는 언제나 쉼표가 된다.


쉰다는 것은 모두를 내려놓고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침묵(沈黙)의 다른 형태이다. 그래서일까, 종일 흘린 땀도 어찌 보면, 말 못하는 몸이 하는 침묵의 모습이다.


그런 이유로 침묵이란 하고픈 말을 마음속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되새김질하듯 소리 없이 안으로 삭히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삭힌 것이 우리 몸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산은 그렇게 오랜 침묵을 익힌 곳이기에 힘든 산행이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람들은 또 산을 그리워하게 되는가 보다. (08. 7. 1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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