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조관형의 백두대간]28-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으리라

(삽당령 - 닭목령 13.6km)

<연재>[조관형의 백두대간]28-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으리라

 


마치 꿈속에서 들려오는 듯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상큼한 갯내음도 묻어왔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그리고 몇 시나 되었을까.


그런데 차는 왜 움직이지 않는 걸까. 가만히 눈을 떠 보았다. 운전기사도 대원들도 모두 잠들어 있다. 분명하지 않지만 차는 벌써 두 번이나 이렇게 어느 바닷가에 멈춰 선 것 같았다.


멀리 대평원에서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듣기위해 땅바닥에 귀를 대고 잠든 유목민처럼 차창에 기대어 졸다가 어렴풋이 파도소리를 듣고 미몽에서 깨어난 것 같다.


파도는 철-썩 처-얼썩, 굳이 우릴 깨울 생각도 없이 밤새도록 방파제에 제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어제 산행을 끝마친 시간이 23시경, 백봉령을 넘어 삼척을 지나 울진 근처심야 김밥 집에서 늦은 석식을 한 것이 새벽 2시경이었는데... 그 후 모두 피곤에 지쳐 잠들었던 것 같다.


집을 떠난 지 벌써 하루가 지났는데도 버스는 아직도 동해안 7번 국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하나 이제 그만 가자고 채근대지 않는다. 모두들 지쳐 곯아 떨어져 있다.


차창 밖으로 거친 바다에 밤새 시달린 파도는 방파제에 몸을 기대어 쉬고 있고 갈매기들도 날기를 멈추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바다 빛이 조금씩 옅어지며 이른 새벽임을 알렸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허기를 불러왔다.


 


겨울은 어찌 보면 ‘잠시 쉬었다 가라’ 하는 계절이다.


나무도 성장을 멈추고, 땅도 숨을 죽이며 쉬고 있다. 그러나 대간 산행은 쉴 수가 없다. 길은 언제나 걷는 자의 몫이다. 우린 또 다시 배낭을 메고 3주 후, 보무도 당당하게 삽당령 아래로 모였다.


대원들 모두 지난 구간이 힘들었는지 대부분 이번 구간은 좀 쉬었다 가자는 의견으로 삽답령에서 닭목재까지 산행거리를 짧게 잡았다.


산자락에는 아직 잔설이 흰옷가지처럼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봄바람에 실려 온 계절은 나뭇가지를 조심스레 흔들며 봄을 깨우고 있었다.


대화실산(1,010m)이 조망되는 봉우리에 올라 코스를 어림해보았다. 멀리


석두봉(991m)까지 능선길이 한 눈으로 들어온다.


산불발생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방화선(防火線)위로 흰 눈이 두텁게 쌓였다. 길은 시원하고 걷기엔 더없이 편하다. 금상첨화랄까 이따금씩 서 있는 금강송이 지루한 능선에서 눈길을 잡아준다. 그 때마다 붉은 줄기에 초록빛 금강송은 이정표가 된다. 언제보아도 자랑스러운 나무다.


 




▲ 겨울산은 침묵에 들고, 산은 그 침묵에 잠긴다.

ⓒ 뉴스울산


석두봉(石頭峰)은 초라한 바위를 머리에 이고 서있는 작은 봉우리다.


멀리 서북쪽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하얀 능선과 북쪽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거대한 풍력발전단지가 연출하는 목가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산도 이제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는가. 쓸쓸한 느낌이 들도록 호젓하다. 침묵이 잠든 숲은 잔설만이 남아 길을 지키고 있고, 비어있는 숲속으로 안개가 낮게 드리웠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적막이 잠든 겨울 숲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옛 선인들은 아름다운 풍광에 깊은 눈길을 주지 말라 했던가, 가인(佳人)의 박복함같이 아름다움도 지나치면 그 속에 스며든 삶이 힘들어짐을 얘기 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주저앉아 지친 몸과 맘을 쉬게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봄기운으로 한결 부드러워진 눈길은 잠시 한눈만 팔아도 무릎까지 푹 푹 빠지게 한다. 그 눈 속에 빠진 발을 빼내려면 다른 발이 묻히길 반복한다. 앞뒤에서 아이쿠- 아이쿠! 를 연발하며 소릴 지른다.


그러나 견딜만한 고통이 자극하는 기쁨은, 어느 정도 장난기까지 숨어있는 즐거운 외침으로 눈길가득 울려 퍼진다. 눈길을 걷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살아가면서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쾌락(快樂)이라 한다면, 이렇게 힘든 걷기를 통해 얻는 기쁨은 만족(滿足)이라 했다.


사람들은 그런 상태를 만심(滿心)이라 하지 않고, 굳이 발(足)이 편해야 된다는 만족(滿足)이라 정의 했을까.


본래 만족하다는 의미에 마땅한 한자가 없어, 다리(足)를 가차(假借)하여 만족이라 썼다지만, 발은 신체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고, 심장과도 멀리 떨어져있어 곧잘 혈액순환 장애가 발생하는 바람에, 발이 편해야 마음까지 평안하게 된다는 뜻인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걷는 동안 마음의 평안이 얻어지곤 했으니 그런 해석을 했을 것이다.


 


선인들은 오래전부터 발의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릎까지 차오르는 적설량에 봄기운이 스며들어 눈 속으로 발이 푹푹 빠지면서 불편하게 되니, 말 그대로 불만(不滿)이 된다.


부족(不足)은 모자람이지 없음(無)이 아니다. 베트남 수도승 탁닛한(釋一行)스님도 ‘발을 걷게 하고 춤추게 하라’, 분노를 다스리고 해소하는 데는 걷기만한 것이 없다며 발을 소중히 여겼다.


예수님도 죽기 전,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열두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주는(洗足式) 것으로 제자들의 가난한 마음을 위로를 했다.


 


삶은 늘 길 위에 놓여있고, 그 길을 발로 가야하니, 발은 삶이 되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知足不辱 )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고(知止不殆) 오래 갈 수 있음(可以長久)을, 즉 지지(知止)를 얘기했다.


어릴 적 집안에서 어린애들이 더러운 것이나 뜨거운 것을 만지려하면 곁에 있던 어른들이 ‘에비 에비 지지-지지다!’ 혼을 내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더러우니 만지지 말고 그만 멈추라는 뜻이다. ‘에비 지지-’ 노자가 도덕경에서 얘기한 ’지지(知止)‘의 어원이다.


 


자신의 분수에 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아는 지혜, 그런 지족(知足)의 깨달음을 얻은 조선 전기 유학자 서거정(徐居正)은 사가집(四佳集)에서 군자는 만족할 줄 아는 것을 귀하게 여겼으며(君子貴知足),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긴 안회(顔回)를 보고, 공자가 어질도다 안회여! 감탄을 했음이니, 산은 우리에게 흰 눈(雪)으로 하여금 족함을 알고(知足), 자기의 분수를 깨닫고(知分), 그칠 줄 아는(知止), 삼지(三知)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장차 이 땅에 현현하여 중생을 구제해줄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도솔천(도率天)의 한자음은 지족천(知足天)이다.


걷는 것 하나로도 멈춤을 알게 하고, 멈출 줄 알게 되니 족(足)함을 알게 하고, 분수를 깨닫게 한다. 이 보다 더 좋은 심신 수행법이 어디 있으랴. 힘들게 올라가면 이제 되었으니, 내려가라 그리고 쉬어가라 한다. 세상일도 그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겨울산은 멈춤이 있는 산이다.






▲ 강설보다 잔설이 더 힘든 것이 겨울산행의 속성이다

ⓒ 뉴스울산


석두봉에서 화란봉(1,069m)까지는 울창한 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리는 능선길이다. 적어도 100여년 이상 자랐음직한 나무들에서 느껴지는 서기(瑞氣)가 온 몸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길은 편해 보이지만 무릎까지 빠지는 적설량은 발자국마다 심술을 부린다.


강설(降雪)보다 해빙기 잔설(殘雪)이 더 힘든 것이 겨울산행의 속성이다.


 


화란봉 정상에 서니 멀 리 남쪽으로 노추산(1,322m)이 지척간이다.


한 때는 신라의 설총과 조선의 율곡선생이 학문을 닦았다는 연유로 중국의 노나라와 추나라의 기풍이 엿보인다하여 노추산이라 불렸다.


그 노추산 아래 구절리 계곡의 구절천(송천)과 임계에서 흘러내린 골지천(骨只川)이 여량(餘糧)에서 만나니 ‘아우라지’, 정선아리랑의 고향이다.


아리랑의 시원에 대해선 많은 설이 있지만 ‘누가 내 처지를 알아주리오’라는 뜻에서 아라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거칠현동으로 숨어든 고려 말 선비들의 비통한 심정을 아라리 가락으로 노래 한 것과 정선 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흔적이 아리랑의 시원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구절양장(九折羊腸), 계곡마다 첩첩히 쌓인 한이 노랫가락으로 승화 된 아름다운 강이다. 그 뿐이랴, 아침햇살을 받아들인 강 빛이 더 없이 아름다운지라, 이름조차 아름다운 조양강(朝陽江)이다.


 


석두봉에서 화란봉까지는 쉬엄쉬엄 가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길은 한없이 편안한 느낌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참나무 군락지와 부드러운 능선 길 멀리서 보아도 화란봉 끝자락엔 금강송 서너 그루가 눈길을 잡아준다. 적어도 수 백 년은 되었음직한 금강송은 커다란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명상에 잠긴 신선의 모습이다.


한 아름이나 됨직한 적색 수간에 힘껏 늘어진 가지와 초록빛 잎은 눈 속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더니, 이젠 신선이 되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이 땅에서 소나무의 변신은 실로 대단하다.


 


소나무(松)는 벼슬(公)을 받은 나무다. 진시황이 태산에 올랐을 때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자 나무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하는 바람에, 그 고마움으로 오대부(五大夫) 벼슬을 하사했다. 더구나 붉은 껍질은 마치 승천하는 용의 비늘을 닮았다 하여, 모든 나무 중 으뜸(百木之長)으로 추앙 받던 나무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이렇게 백설이 가득한 산중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문재(文才)가 되는 나무, 그 붉은 소나무가 닭목재로 내려서는 길목에 도열하듯 우람한 모습으로 서 있으니, 가히 그 풍광이 또한 장관이요, 발길조차 아껴 걷고 싶은 길이 되었다. 아 아름다운 길이다.


 


오늘 산행구간은 강릉과 임계를 잇는 고갯마루 닭목재다.


남쪽 대기리에는 ‘닭목이’, 북쪽 왕산리엔 ‘닭목골’이라는 지명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풍수가들이 이곳에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이 있다 해서 왕산면으로 가는 고개 이름도 닭목재가 되었으리라.


예로부터 조선 땅 산지사방이 명당이요, 발복처(發福處)인지라, 닭목재도 천하명당이 숨어있어 매장한 시신을 파헤치고라도 그 묘지를 빼앗는 수난을 겪는 바람에 고갯마루엔 인골이 나뒹굴었다는 택시기사 얘길 듣고 보니, 산이 아름다운 것은 좋은 나무들이 그 산을 지키고 있음이요,


땅이 그 이름을 지키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것 같다.


( 08. 3.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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