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 흙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류윤모 논설실장
다시 젊음이 찾아온다면 국토를 종단하는 도보여행을 꿈꿀 것이다.
사서 오랫동안 장롱 구석에 접어 넣어두었던 밀리터리룩 차림으로 벙거지 모자 푹 덮어쓰고
1박2일 또는 2박3일 일정의 매미 소리 귀청을 찢는 여름의 입구로 들어서리라.
흙먼지 풀석이는 비포장 흙길로 들어서면 잡초 무성한 논두렁 밭두렁, 하얀 감자꽃 핀 밭이랑,
넙적한 혓바닥으로 흙의 가르침 전하는 호박잎에도 눈길을 주며 하염없이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작렬하는 태양을 등에 지고 원시의 여름을 관통하는 도전을 인생의 첫머리에 놓으리라.
길은 인생과 닮아있다. 오르막이 있다면 내리막이 있고 잘못 접어든 길은 직사하게 고생을 하고
도 목적지와 동떨어진 곳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흙먼지 풀석 풀석 이는 그리운 시골길이 사라져가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오솔길은 점차 사라져
가고 시커먼 아스팔트를 덕지덕지 짓이겨 바른 일직선의 도로로 대체되어가는 추세다.
구부러진 길을 하염없이 걷다 보면 주위의 풍경도 보이고 생각에 잠기게 되지만 자동차를 타고
휙휙 쏜살같이 지나가는 도로는 생각이 숙변처럼 머물 틈이 없어 감정이 사라진, 다만 무정한 속
도일뿐.
가다 보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등성이 아래 옹기종기 이마를 맞댄 인가들의 정겨움, 마을의 인
정미가 살갑게 다가온다. 마을의 입구로 들어서면 동구 밖 오지랖 넓은 그늘을 드리운 느티나무
아래 잠시 땀을 식히는 시간. 배낭을 끌러놓고 보온병 속의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을 젓가락으
로 휘휘 저어 출출한 뱃속에 점을 찍는다. 씻어온 오이를 뚝뚝 분질러 우적우적 씹으며 후식으로
커피 한잔 곁들이면 이보다 더한 점심이 또 어디 있으랴.
우리가 여행, 하면 많은 일행이 북적거리며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패턴을 즐거움이라
고 익숙해 왔다. 때론 혼자서 하는 여행의 고즈넉한 낭만도 인생을 살찌우는 각별한 의미로 만들
어낼 수 있다.
진실로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길 위에서 다시금 새로운
각오를 다질 일이다.
흐르는 땀을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연신 닦아내며 걷다 보면 밭에서 일을 하는 농부들을 만나게
되고 날마다 심드렁하게 받는 밥상의 의미도 곱씹어보게 되리라.
지겹도록 발품을 팔아가며 마을을 몇 개나 지나 시냇물 졸졸 흐르는 징검다리를 건너 녹음 무성
한 산길을 휘돌아 반환점을 찍고 되짚어 걷다보면 어느새 해는 서산에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으
면 작렬하던 지열도 서서히 식어갈 것이다.
하루 내내 파노라마 같은 일정을 되새기며 염천의 도보여행을 무사히 끝낸 자신에 대한 극기의
보람과 긍지가 뿌듯 해오며 피곤한 다리를 세워두었던 차 속에 접어 넣고 일정의 마침표를 찍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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